내가 알코올 중독자라고?

여기 몇 가지 질문들이 있다.

 

  • 일주일이나 그 이상 술을 안 마시기로 결심했으나 하루 이틀 밖에 안 간 적이 있습니까?
  • 술에 덜 취할까 하는 생각에서 술 종류를 이것저것 바꾸어본 적이 있습니까?
  • 술을 마시고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사람이 부럽습니까?
  • 술이 충분치 않아서 ‘2차’를 가려고 한 적이 있습니까?
  • 술 때문에 직장이나 학교를 못 나간 적이 있습니까?
  • 술을 먹고 ’테이프가 끊긴‘ 적이 있습니까?
  • 술을 마시지 않으면 인생이 더 나아질 것 같다고 느낀 적이 있습니까?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 중 몇 개나 ‘예’가 있는가? 이 질문들은 미국과 캐나다를 중심으로 한 유명한 금주 협회로서 수많은 알코올 중독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Alcoholics Anonymous (AA)’의 웹사이트에 올라 있는 ’당신은 AA를 필요로 하는가?‘라는 제목의 웹페이지의 12개의 질문들 중 일부이다. 즉 알코올 중독의 가능성이 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설문지인 것이다. 판정 기준은 무엇인가? 12개 중 4개 이상의 ’예‘가 있으면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필자가 의역하였음. 원문은: http://www.alcoholics-anonymous.org/english/E_Pamphlets/P-3_d1.html)

 

한국에서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회식’이란 풍습에 무척 익숙할 것이다. 서로 친해지기 위해서 술을 먹고, 새로 들어온 사람이 있으면 모여서 먹고, 누가 떠나가게 되면 또 먹는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진탕 퍼마신다’. 한국의 평균적인 직장인으로서 특별히 술을 기피하지 않는 사람, 특히 남성들 가운데 위의 질문들에 대해 ‘예’라는 대답이 여럿 나오는 것은 상당히 흔한 일일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 자신도 미국에 있었던 최근 동안은 아니지만, 그 전에는 분명 4개 정도는 ‘예’였다!

 

‘아니, 그럼 내가 알코올 중독자란 말야? 말도 안돼!‘

 

필자가 미국에 와서 한국과 달라진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술’이다. ‘회식 없는’ 세상에서 사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도 모여서 파티를 하고 술을 마시지만, 한국인들처럼 ‘코가 삐뚤어지게’ 마시지는 않는다. 만일 그런 자리에서 술에 취해 비틀거리고 혀꼬부라진 소리를 하고 (음, 그렇지 않아도 어설픈 영어가 어찌 될지 모르겠지만) 심지어 웩웩거리고 좀 전에 먹었던 것을 게워낸다면 의심의 여지가 없는 알코올중독자로 찍힐 것이다. 아마도 다음 날부터 직장에서 사람들이 슬슬 피하면서 뒷전에서 수군거릴 것이다. 파티에 초대받는 일도 없어질 것이다.

우리가 문제가 있으니 선진국을 본받자는 소리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위의 12개 질문에 ‘예’가 좀 나온다고 해서 알코올중독자라고 할 수는 없다.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우리 나라에서 그 질문들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분명 다른 종류의 설문지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AA 가 그들의 웹사이트에서 누차에 걸쳐서 지적하는, 내가 알코올중독자인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지 그 어떤 다른 사람도 – 가족이든, 친구든, 의사든 – 아니라는 주장은 분명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술을 통제할 수 없다면, 즉 내가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술이 나를 마시는 지경이라면 알코올 중독자라고 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과연 술을 통제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진정 판가름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 밖에 없다. ‘객관적인 기준’이란 것을 제시한다는 것은 무척 어렵다.

한 두 잔 이상 마시지 않고 전혀 취하지 않는 사람과 식음을 전폐하고 깡소주를 마셔대는 분명한 알코올 중독자는 쉽게 구분이 되는 것 같지만, ‘술고래’와 알코올 중독자는 종이 한 장 차이다. 그리고 마셨다 하면 만취할 때까지 마시는 일이 흔한 우리 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 경계를 넘나든다. 게다가 술을 권하는 것이 매우 일반적이고 억지로 먹이는 경우도 드물지 않은 실정이고 보면 ‘스스로 술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판단하기는 더욱 복잡해진다.

또한, 술 때문에 벌어지는 문제들에 대해 관용적인 것이 또 하나의 특징이다. 필자는 이러한 문화는 양날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관용적인 문화가 어떤 때는 거의 알코올 중독자에 가까운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사회적인 기능을 수행하도록 하는 역할을 할 때도 있는 반면에, 술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한 문제 의식을 흐리게 만들기도 한다.

미국에서라면 술 마시고 다음 날 일어나지 못해 직장에 결근을 한다면 해고당하기 십상이겠지만,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를 보셨는지? 해고당한 주인공은 ‘에라, 마지막으로 실컷 먹고 죽자!‘ 하면서 커다란 쇼핑 카트 하나 가득 술을 사 담는다.) 우리 나라라면, 그리고 특히 그 술자리가 직장의 ‘공식적인’ 회식 자리이고, 다같이 엄청 마신 것이 확실하다면, 어쩌다가 있는 일이라면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도 있는 것이다.

필자는 사회 통념상 무척 술을 많이 마시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때문에 술에 얽힌 일화가 적지 않은데,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인턴 시절 일반 외과 근무를 할 때이다.

의사들 가운데에서도 외과 의사들은 술고래들이 많기로 유명한데, 필자가 같이 근무했던 분들도 예외는 아니었고, 어느 날 저녁 엄청 나게 퍼 마셨지만 다음 날 아침 여전히 수술에 임해야 했다. 헌데 이것도 연륜이라 해야할 지, 아니면, 분명 같이 술을 먹은 집도의를 비롯한 선배들은 멀쩡한데, 제일 나이 어린 필자는 힘들어서 다리가 후들후들 거리고 식은땀을 흘리는 지경이었다.

수술을 하면 당연히 피가 나기 마련이고 지혈을 위해 쓰는 방법 중 하나가 전기 소작기를 이용하여 혈관을 지져버리는 것인데, 좀 엽기적인 얘기가 되겠지만, 이것을 사용하다보면 비계 태우는 역한 냄새가 수술실에 진동하기 마련이다. 그렇지 않아도 전날 먹은 술로 속이 뒤집혀 있던 필자에게 이 냄새가 치명타였다. 결국 하늘이 노래지면서 욱욱거리고 구역질을 시작했다.

기겁을 한 집도의가 “어, 어! 얘 좀 내보내, 빨리!” 하고 소리를 질러 탈의실까지 겨우 기어나와 자빠지고 말았다. 갈라 놓은 남의 뱃속에다 토했다면 어찌 되었을 지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하지만 필자에게 더 이상 뭐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무서워서 어디 수술을 받겠느냐고 하지는 마시기 바란다. 의사도 사람이고, 술을 마실 수 있다. 필자와 그 선배 의사들의 차이는 지고 있는 책임의 경중과 다음 날 수술에 지장이 없으려면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경험으로 알고 지켰는가 하는 것이리라. 하여간에, 이런 상황이라도 알코올 중독자로 찍혀 매장되는 일은 없다.

한편, 술을 마시고 부리는 각종 행패, 성희롱, 길거리에 나뒹구는 추태, 싸움질, 음주 운전, 게다가 해마다 학기초면 신입생 환영회에서 술을 먹다가 숨지는 어처구니없는 비극적인 사고가 벌어지는 것 등등을 생각하면 술에 대한 관용이 지나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간질환 등 과음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건강 문제는 두 말할 필요도 없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우리 나라의 음주 문화가 술을 마시는 데에 관용적인 만큼 ‘술을 마시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관용적’이었으면 하고 생각해 본다. 술자리에서 술을 마시지 않으려면 종교 때문에, 몸이 불편해서 등등, 얼마나 장황하고 구차한 변명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면 이는 분명 아쉬운 점일 것이다. 이를 뽑았다고 해도 ‘그까짓 걸 뭘!’ 하면서 가만 놔두지 않는 사람도 있다.

물론 즐기려고 모였으면 즐거운 시간을 가져야지, 그저 술잔을 앞에 놓고 ‘제사’를 지내면서 맹숭맹숭하게 시간을 죽인다면 참으로 시간이 아까운 일이다. 하지만 엉망으로 취할 정도로 마셔야 겨우 흥이 나고 노는 것 같이 놀았다고 생각하면 그건 더 딱한 노릇이다. 그렇게까지라도 해야 어색한 것이 겨우 없어지는 사이라면 과연 뭐하러 모이는 것인지 반문해봐야 할 것이다. 사업상 어쩔 수 없다? 좋은 핑계지만, 분명 다른 해결책을 찾아야만 할 것이다.

필자의 눈으로 볼 때에는 맥주 한 병 붙잡고 몇 시간을 홀짝거리는 미국인들의 음주 습관은 영 맘에 들지는 않는다. 저것보다는 조금 더 마시고 조금은 취해도 괜찮은데 하는 생각이 들고, 전혀 취하지 않았어도 취한 것 이상으로 떠들썩하게 노는 그들의 모습은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싶어 오히려 ‘깨는’ 것 같다. 하지만, 남이 얼마나 마시건 상관하지 않는 것은 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너무 냉랭하다고? 그렇다. 그들은 냉정하다. 옆 사람이 술 한방울 안 마시고 안주만 축을 내건, 아니면 반대로 마구 퍼마시고 엉망으로 취하건 상관 않는다. 단, 후자의 경우는 상종 못할 알콜 중독자로 가차없이 낙인을 찍어버리고 따돌려 버리는 것이다. 그들을 그대로 본받을 필요는 없지만, 조금만, 아주 조금만 바꾸어 보면 어떨까? 우리는 옆 사람이 술을 얼마나 마시는 것에 대해 지금보다는 조금은 신경을 덜 써도 이미 충분히 정이 넘쳐흐르니까 말이다.

2001. 0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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