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일하는데 비해 돈 많이 버는 직업이 있고 일은 죽어라고 하면서도 별로 대접 못 받는 직업도 있다. 하지만, 돈을 많이 벌고 적게 벌고를 떠나서 일 자체만 놓고 본다면 어떨까? ‘세상에 쉬운 일이 없다’는 말은 믿을 만한 말이다.
자기가 의사라고 의사라는 직업이 엄청 힘들고 피곤하고 스트레스 받는 직업이라고 주장해 봤댔자 의사들 끼리야 그래그래 맞다맞다할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도 과연 그렇게 생각해 줄지? 세상 사람들은 제각기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힘들고 피곤하고 스트레스 먹어가면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남 힘들다 하는 것은 코웃음치기 마련이다. 남의 다리 부러진 것보다 내 발바닥 티눈이 더 아프다!
사람들이 자기 생각밖에 못하는 것은 틀린 얘기가 아니지만 세상 살기 힘들다는 얘기도 맞는 얘기다. 대한민국 밖에서는 살아본 적이 없어서 다른 사회는 어떤지 잘 모르겠으나, 대한민국이 살기 팍팍한 나라임에는 틀림없다는 생각은 팍팍 든다.
의사로서 전공의 시절이란 대개 고달프고 병원에서 살다시피 하는 시절이지만 대개는 년차가 올라가면 조금은 여유가 생기는 면도 있다. 필자도 4년차가 되자 매일은 아니더라도 ‘퇴근’이란 것을 – 여기서 퇴근이라 함은 일반 직원들과 비슷한 정도의 시간에 병원을 나서는 것이다 – 해볼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헌데 문제가 그렇게 간단치 않았다. ‘정상적인’ – 뭐가 정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 시간에 퇴근을 하려니 뭔가 몹시 불안하고 켕기는 것이었다. 좀 일찍 병원을 나서려고 짐을 챙겨들고 나오다가 윗사람과 마주치기라도 하면 멋쩍고 쑥스러운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맨날 농땡이만 부리는 게으른 놈으로 찍히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드는 것이었다.
필자는 개구멍을 항상 애용한다. 남들이 다 드나드는 문으로 출입하는 것보다는 남들이 잘 모르고 인적이 드문 출입구가 있으면 즐겨 이용한다. 그래서 이 경우에도 앞쪽으로 나아가 엘리베이터를 타는 대신에 뒤쪽 비상구를 이용하였다. 물론 방을 나서기 전에 고개를 빠꼼 내밀고 복도에 사람이 없음을 확인한 뒤에 말이다. 이런 때는 이순신 장군이 생각난다. ‘나의 퇴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당시에는 이런 일들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지만, 좀 지나고 나서 생각을 해보니, 내가 도대체 왜, 해야할 일을 펑크를 내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좀 일찍 퇴근한다는 사실만으로 이렇게 신경을 쓰고 불안해하고 무슨 총알이라도 날아올 것 같이 사주경계를 하면서 남의 눈을 피해 잽싸게 복도를 가로질러 비상구로 뛰어들며 특공대 흉내를 내야 하는지 참으로 한심하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한 일이었다.
하지만 눈을 조금 돌려보면 그다지 이상해할 일도 아니다. 이런 일은 나만이 겪는 것을 아닐 것이다. 물론 필자와 같은 386 세대와 더 젊은 세대는 행태가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개개인의 행태를 떠나서 전반적인 분위기를 보자면 이 사회에서는 일을 많이 하고 늦게 퇴근하는 것이 미덕으로 되어 있는 것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그럼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미덕이 아니라는 말야?’라고 얘기할지도 모르겠다. 뭔가 한 나사 풀린 놈이거나 게을러터진 놈이니까 저렇게 삐딱하게 나간다고 여길 수도 있겠다. 필자가 삐딱한 사람인지도 모르긴 하지만 그저 원래 그렇다고 당연하게 여기던 것도 한번쯤은 뒤집어 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최근에는 야간 외래를 개설하는 병원이 생기고 있다. 사람들이 하도 바쁘다 보니 낮에 병원을 도저히 올 수가 없어 생기는 현상인 것이다. 하지만 왜 꼭 그래야만 할까? 반대 방향으로 변화가 일어나면 어떨까? 직장에서 반일(半日) 휴가와 같은 제도가 충분히 활용된다면 병원에 가고 싶어도 밤중 아니면 시간이 없다는 상황은 별로 생기지 않을 것이다.
열역학 제 몇 법칙인지 잘 모르겠지만, 우주의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한다고 하는데 인간은 한없이 바빠지기만 할 것인가. 자기가 바빠서 낮에 시간이 없으니 다른 사람에게 밤까지 더 일을 하면서 자신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기를 요구하는 일이 계속 벌어진다면 이는 끝없는 악순환이 될 것이고 인간이 해야하는 일의 양은 정말로 끝없이 증가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엇을 위해서 그래야만 한단 말인가?
필자 같은 게을러터진 사람이 보기에는 ‘일 중독자’라고 밖에는 달리 부를 말이 없는 정도의 사람이 훌륭하고 바람직하고 본받을만한 인물로 대중 매체 등에 소개되는 경우를 많이 본다. 1년에 수십 편의 논문을 써내면서 집에 들어가는 시간이 아까워서 아예 연구실에 살림을 차리고 집에는 일주일에 한번 빨랫감 갖다주러 들어가는 교수라든지…. 자기 일에 몰입하고 열심인 것도 좋지만 정도 문제 아닐까? 학문적인 업적을 얼마나 엄청나게 쌓을지 모르겠지만 사실상 가족의 일원이기를 거의 포기한 가장을 둔 그 가족들은 어쩔 것이며 그런 생활을 하는 사람의 일반적인 교양, 사회성, 인격 등이 과연 어떠한 영향을 받을 것인지? 더욱 피부에 와 닿는 걱정은 – 그 밑에서 일하는 학생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반공포스터에 북한 사람들을 머리에 뿔나고 꼬리가 달린 – 꼬리 끝은 화살표 모양 – 빨간 괴물로 그리던 시절에 많이 듣던 얘기 중 하나가, 북한에는 ‘천리마 운동’이니 ‘아무개 따라하기’니 하는 것이 있어서 인민들이 죽도록 일하도록 탄압한다는 얘긴데,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도 그와 근본적으로는 다르지 않다는 섬뜩한 생각이 든다. 단지 그런 억압이 노골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의식 속에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은근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교묘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무슨 정치적인 선동 구호를 외치는 것 같이 되어 버렸지만 필자의 바램은 소박한 것이다. 일하고 남는 시간이 가족과 보낼 시간, 심신의 피로를 풀 시간, 신체를 단련할 시간, 문화적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시간 등등을 충족할 만큼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소박한 바램이라고 하고 써놓고 보니 꿈이 너무 원대하다. 택도 없시유!
이 택도 없는 바램을 이룰 방법이 무엇일까. 방법은 단 하나 밖에 없다. 노동 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잠자는 시간을 줄여 봐? 그건 절대로 안되지!) ‘무슨 소리야! 지금 때가 어느 땐데! 허리띠 바짝 졸라매고 X 빠지게 뛰어야 할 이때에!’라고 펄쩍 뛰는 사람이 있다면 굳이 말리지는 않겠다. 그런 사람들은 언젠가 심장질환을 전공하는 필자의 환자가 되어 필자를 먹여 살려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너무 악담이 심했나?)
노동 시간의 단축은 이제 노동 운동가들이 외치는 정치적인 구호만은 아니다. 전세계적으로 노동 시간의 단축은 대세이기는 하지만 노동 강도라는 측면과 함께 고려한다면 정말 인간이 받는 스트레스의 양이 줄어들었는지 의문이다. 하물며 일본과 함께 세계적으로 장시간 노동으로 유명한 우리 나라에서는 두말할 필요가 있으랴! 노동 시간 단축은 과로사와 같은 문제의 해결과 직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공평한 가사 및 육아 분담과 같은 여성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제들의 해법과 직간접으로 연결되어 있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인 것이다.
법적으로 노동 시간을 단축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 나라의 평균 노동 시간은 직종에 따라 약간씩 다른데, 약 44-6시간 내외이지만 이는 통계일 뿐이고 현실적으로는 그보다 훨씬 길다는 것이 일반적인 추측이다. 화이트칼라의 노동시간은 분명 훨씬 더 길 가능성이 많다. 이는 법정 노동 시간 뿐 아니라 이 사회에 깊이 뿌리 박은 각종 ‘죽어라고 일하자’ 이데올로기를 청산해야 해결될 문제다. 또, 일 중독증은 본받아야 할 미덕이 아니라 치료를 요하는 정신질환(?)으로 간주해야 할 것이다.
이런 글을 쓰는 인간은 도대체 어떤 인간인가 궁금해할지 모르겠지만 필자가 뭐 마냥 놀자판인 사람이거나 혹은 무슨 레저 산업 쪽으로 창업을 고려 중이라든가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세상에 ‘해야 할 일’은 너무 많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시간은 너무 없다는 사실이 서글퍼 좀 넋두리를 풀었을 따름이다. 에구구~ 그만 놀고 일하러 가세~!
1999. 7. 9.